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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십대아빠의 블로그 2026. 5. 13.

알렉산다르 주리치(세르비아어: Александар Ђурић / Aleksandar Đurić, 1970년 8월 12일 ~ )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전직 카누 선수이자 싱가포르의 전직 축구 선수이다.[1] 축구 선수 시절에는 공격수로 활동했다.

15세에 유고슬라비아 주니어 카약 챔피언에 올랐고 17세 때 세계 8위에 올랐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1992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대표로 참가하여 카누 남자 C-1 500m 종목에 출전했다.[2] 올림픽 폐막 이후에 축구 선수로 전향했고 헝가리,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활동했다.

1999년에 싱가포르 S리그(현재의 싱가포르 프리미어리그) 무대에 데뷔한 이후에 홈 유나이티드, 게일랑 유나이티드, 싱가포르 암드 포스, 탬피니스 로버스에서 프로 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15시즌 동안에 리그 통산 304골을 기록하면서 8번의 리그 우승, 3번의 싱가포르컵 우승에 기여했다. 또한 S리그에서 3번의 올해의 선수상, 4번의 득점왕을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3][4]

37세 시절이던 2007년에 싱가포르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데뷔했으며 2008년 5월에는 외국 출신 선수로는 처음으로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선발 출전했다. 2012년 12월에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할 때까지 53경기에 출전하여 24골을 기록했다.[주해 1] 2013년에는 자신의 소속 팀이었던 탬피니스 로버스의 전임 코치로 임명되었고 44세였던 2014년 11월에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어린 시절
알렉산다르 주리치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현재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스릅스카 공화국)의 도보이 외곽에 위치한 리파츠에서 태어났다.[5] 어린 시절에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서포터였던 그는 자신의 고향인 도보이를 연고로 하는 축구 클럽인 슬로가 도보이의 유소년 팀에서 골키퍼와 미드필더로 활동했다.[5][6][7] 또한 12세 때 가슴의 성장 장애를 치료하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카약을 배우기 시작했다.[1][8] 15세 때에는 유고슬라비아 주니어 카약 챔피언이 되었고 17세 때에는 세계 8위에 올랐다.[9][10]

주리치는 17세 때에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에 징집되어 장교가 되었다. 주리치의 아버지는 보스니아 전쟁이 임박하자 가족의 혈통을 지키기 위해 주리치와 그의 형제들이 나라를 떠나기를 원했다.[1] 주리치는 나이가 어린 스포츠 선수인 만큼 고향을 떠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저의 아버지는 이 전쟁에서 싸웠고 동생은 거의 5년 동안 싸웠으며 어머니는 1993년에 무슬림 군대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그들이 우리 마을을 폭격해서 우리 집에 직격탄을 날렸어요. 정말 큰 폭탄이 터졌고 제 어머니는 즉사하셨습니다. 저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피비린내 나는 내전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었지만 저는 아무런 원한도 없습니다. 저는 인종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보고 이곳 싱가포르에서 무슬림 어린이를 입양했습니다."라고 밝혔다.[1] 불과 300 독일 마르크밖에 안되는 현금을 갖고 세르비아로 건너간 그는 한 시즌 동안 2부 리그에서 뛰었으며 나중에 스웨덴의 축구 클럽인 AIK에서 훈련을 받았다. 스웨덴 당국에서는 그에게 난민 신청을 제안했으나 거절했다.[1] 그는 유고슬라비아 해체로 인하여 공인된 여권 없이 헝가리에서 발이 묶인 상태였고 한동안 세게드에 위치한 카페와 식당을 전전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1] 주리치의 가족들은 그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헝가리 축구 2부 리그에 소속되어 있던 축구 클럽인 세게드 LC에 합류하라고 조언했다.[1]